BaaaaaaaarkingDog
코딩, 해킹
크리스마스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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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드림클래스!!

20년 겨울캠프에 수학분야 멘토로 합격했다.

 

4년 내내 컴퓨터만 하고 살았는데 겨울에도 컴퓨터에 찌들어있긴 싫어서 지원했고 합격해서 다행이다.

 

1. 서류 전형

 

자소서를 마지막으로 쓴게 4년전이라 너무 까마득했다. 그래도 대학교에 와서 이것저것 한게 많아 항목은 문제없이 채울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에 재학중이고 학점은 7학기 기준 GPA 4.18 / 4.5였다.

 

봉사활동 관련 증빙

- 고등학교때 삼성 드림클래스와 비슷하게 발전소 인근 소외계층 아동을 학교로 초청한 캠프에서 인솔자로 참여한 것

- 1, 2학년 때 대안학교에서 수학과 프로그래밍을 가르친 것(73시간)

- 3, 4학년 때 아름다운 가게 매장 운영 도움, 국립서울현충원 환경정화 활동을 이것저것 봉사활동을 한 것(67시간)

 

동아리 활동 관련 증빙

- 교내 봉사동아리에서 5학기동안 활동하고 중간 1년간은 집행부를 했던 것

- 교내 운동부에서 6학기동안 활동한 것

 

기타 관련 증빙

- 17년 2월에 토익 870점을 획득

- 학교에서 Peer Tutoring 프로그램을 통해 타과 학생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침

- 취준생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무료 코딩테스트 대비 특강 진행

 

수상경력

- 삼성과 관련이 있는 SCPC,  SCTF, 육목 알고리즘 대회에서 수상한걸 적음

 

토익의 경우 서류 제출 당시에는 만료된 점수이고 수학으로 지원해서 별로 의미는 없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제출했다.

 

자기소개서 - 한 문장 소개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삶을 지향합니다.

 

자기소개서 - 지원동기
저는 교육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습니다. 저는 다행히 화목한 가정에 태어나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적성에 맞는 공부를 잘 해오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등학교 시절 학교와 ------이 협약을 맺어 발전소 인근 소외계층 아동을 학교로 초청한 캠프에서 인솔자로 참여하고 대학에 와서도 대안학교 멘토링을 포함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는 등 미숙하게나마 제가 받은 혜택을 사회에 베푸는 삶을 지향해왔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 학생들에게 어렴풋이라도 더 넓은 세상을 알려주고,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가슴이 뛰게 하는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드림클래스를 통해 다시 한번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자기소개서 - 성장과정
저는 어려서부터 수학과 컴퓨터에 두각을 드러내 한국과학영재학교, 이후 고려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프로그래밍과 정보 보안 분야가 적성에 잘 맞아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학업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좋아해 다양한 전공 관련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학업과 대회 출전으로 학기 중에는 바쁘지만 컴퓨터 전공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운동부에 가입해 꾸준히 운동을 즐겼고 또 사회봉사 동아리에서 벽화 봉사, 연탄 봉사, 그리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대안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저의 지난 대학 생활은 단순히 전공 관련 지식만을 습득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이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임을 배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자기소개서 - 성격의 장단점
저는 외향적이고 성격이 순하고 밝습니다. 그리고 타인과 마찰이 발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계산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집단에서 다들 하기 싫어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성격의 일을 거리낌 없이 맡아서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합니다. 인간관계에서야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고 해도 제가 약간 손해를 보면 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줄 멘토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 옳지 않은 것을 따끔하게 지적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적어도 멘토로 캠프에 참여할 때만큼은 따뜻하면서도 엄하게 가르쳐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자기소개서 - 리더십 경험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회장에 출마해 당선되었습니다. 부회장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윗학년 학생회가 새내기들을 소집해 정신교육을 시키고 혼내는 문화를 없애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했기에 독단적으로 그 문화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기와 선배로부터 많은 반대를 받았고 결국 원하는 만큼 바꾸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선후배 사이의 군기 문화가 고등학교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회도 그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가 실패했던 까닭은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려고 했을 뿐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대학교 동아리 집행부를 할 때에는 무작정 내 생각을 관철하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논의를 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기소개서 - 과외 경험
대학교 1, 2학년 때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고려대학교 인근 대안학교에서 검정고시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은 기초 지식이 부족했고 수학에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차 방정식에서 근과 계수의 관계를 가르치던 도중 학생들이 일차 방정식을 해결하는 법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적도 있었습니다. 학생들과의 논의 끝에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고 중학교 1학년 단계로 돌아가서 진도를 쌓아 나가기로 했습니다. 학생들도 사람인지라 내준 숙제를 다 해오지 않는다거나, 바로 직전에 가르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제자리걸음을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검정고시 진도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2. 면접

 

면접을 보기 위해 일요일 오전 7시 반까지 삼성전자 R&D 캠퍼스로 가야 했다. 하필 면접의 첫 시작시간에 배치되어 그로 인해 집에서 거의 5시 45분 쯤에는 출발해야 했다. 굉장히 힘들었다.

 

친형이 초등학교 교사여서 미리 면접에서 나올만한 질문들 몇 개에 대한 답을 듣고 갔다.

 

예를 들어..

 

학생이 말을 안들으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 학생들끼리 자율적으로 규칙을 정하게 하고, 그 규칙을 위반했을 때 자율적으로 정한 규칙을 따르게끔 유도한다. 교사 주도의 교육관은 예전의 방법이다.

 

학생들끼리 싸우면 어떡하나? -> 적극적으로 개입해 말려야 한다.

 

인적성검사

맨 처음에 가서는 심리검사 같은 느낌의 문제들을 컴퓨터로 풀게 했다. 보통 심리검사라고 할 때 "나는 때때로 우울감에 빠진다" 이런 문항이 주어지고 1, 2, 3, 4, 5중 하나를 정하는 유형을 많이 보는데, 이번 면접에서 했던 심리검사는 문장 3개를 주고 나와 가장 비슷한 것과 가장 다른 것을 하나씩 고르는 유형이었다.

 

문제는, 세 개가 다 좋은 말이거나 세 개가 다 안좋은 말인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오래되어서 문제가 정확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 고를 때 조금 난처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했다.

 

면접

면접은 자기 소개 1분, 시범 강의 1분, 질답 8분으로 진행되었다. 면접을 준비할 때 시간을 재면서 연습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확률과 연립일차방정식 정도는 어떤식으로 강의를 해야겠다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면접실에 들어가니 두 분이 계셨고 우선 자기 소개를 하도록 했다. 적당히 자기소개서 한 문장 소개와 지원동기 내용을 쓰까서 말을 했다. 그 후에 앞에 놓여진 주제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 시범 강의를 진행하도록 했다. 주어진 주제는 대략 8개 정도였고, 다행히 주제중에 확률이 있어서 면접관들을 학생으로 여겨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을 물어본 뒤 "학생들이 BTS를 좋아하는데 앨범을 사서 지민 혹은 뷔의 포토카드를 뽑을 수 있는 확률"이라는 스토리로 밀어붙였다. 사실 BTS가 몇 명인지도, 앨범을 사면 포토카드를 주는지도 모르는데 방금 찾아보니 7명이네여

 

이후에는 자소서 관련 내용을 몇 개 여쭤보고 끝이 났다. 8분은 생각보다 많이 짧았고 다른 고사실 상황을 모르겠지만 내가 있던 고사실은 압박면접의 느낌 없이 아주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위에 언급했다시피 학생이 말을 안들으면/학생들끼리 싸우면 어떡할지에 대한 질문을 준비해갔는데 면접관님은 예상치못하게 다른 동료 참가자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지를 여쭤보셨다. 순간 당황했지만 적당히 서로 대화하고 양보하면서 해결할 것이라고 잘 대답했다.

 

연수와 실제 캠프 참여 후기는 참여한 후에 작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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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Competitive Programming 여정을 마무리하며

2019 ICPC 다낭 리저널에 참가했고 아쉽게도 6등으로 끝나 월드파이널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학과의 다른 팀인 Powered by Zigui팀은 3등을 기록했고 다낭 리저널이 가장 규모가 큰 리저널이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으면 월드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적으로 친하기도 하고, 또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좋은 팀이었습니다. 이미 같이 있는 동안 축하를 많이 해주었지만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___^

 

 

저는 프로그래밍을 초5때부터 했고, 정보올림피아드 자체는 중학교 시절부터 꾸준하게 나갔습니다만 알고리즘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게 제가 고1일 때 지역본선 1번 문제로 BFS의 바이블과 같은 토마토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당시에는 BFS를 몰라서 $O(N^3)$ 풀이로 풀어서 제출했습니다. 당연히 광탈이었습니다 ㅎㅎ;;

 

고2, 고3 때에는 정올에서 은상을 받고 국제정보올림피아드 상비군 교육생으로 선발이 되긴 했지만 PS에 큰 흥미를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해킹과 암호학을 조금씩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와서는 알고리즘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해 첫 학기에는 교내 알고리즘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리즘을 전혀 모르는 채로 학과에 왔던 친구 몇 명이 알고리즘에 매진하는 것을 보고 다시 알고리즘에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학년 2학기에는 알고리즘 동아리에 가입은 했지만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레이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때까지는 "그냥 옛날에 정올 좀 공부했고 지금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학년 1학기, 즉 2017년 3월쯤부터 본격적으로 백준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건 아니었습니다. 거창한 목표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할게 없는데 문제나 풀자 하는 생각으로 문제를 조금씩 풀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2017년 SCPC에서 뜻하지 않게 턱걸이로 수상을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당시 실력이 수상권에 들만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운이 좋았습니다.

 

이후 2017년 ICPC 대전 리저널에서 고려대 팀이 월드파이널 티켓을 따게 되고 그것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하면 월드파이널에 충분히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ICPC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 1, 2월에는 삼성 R&D캠퍼스 시큐리티 랩에서 인턴을 했는데 그 기간에 백준과 코드포스를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출퇴근에 대략 1.5시간 정도가 걸려서 시간이 애매하면 그냥 회사에서 잘 생각으로 짐을 다 싸들고 온 뒤 밤에 코드포스를 치고 센터 수면실에서 잔 후 다음 날 출근을 하곤 했습니다.(사실 업무가 별로 빡세지 않고 하루 6시간 근무여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짧게나마 정올을 했던 짬이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퍼플에 도달 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여름에 ICPC팀이 정해진 이후에는 각 잡고 팀연습을 하며 ICPC를 대비했습니다. 당시에는 월드파이널에 가든 못가든 올해까지만(=2018년 까지만) ICPC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에는 전년도 월드파이널 메달 팀이 순위 산정에서 제외된다는 규정으로 서울대가 빠져서 월드파이널 진출 가능성이 한 50%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서울리저널에서는 좀 절었고, 하노이리저널에서는 많이 근접했지만 결국 월드파이널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처음의 생각과 다르게 도전을 끝내기가 아쉬웠습니다. 그렇기에 일 년을 더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열심히 하면 레드에 도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도 오렌지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사실 중간에는 강등도 한번 당했어서 더 충격이었습니다. 분명 작년과 비교했을 떄 아는 것은 많아졌는데 정작 레이팅은 계속 제자리여서 좀 답답했습니다.

 

어찌됐든 2019년의 ICPC 기간이 돌아왔고, 서울 리저널에서는 충격적으로 말아먹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제 입장에서 조금 억울한게 K번 문제에서 0.000000 대신 0을 출력해서 틀린 것으로 인해 좀 많이 꼬였습니다. 끝날 때 까지 0을 출력해서 틀렸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 K로 인해 다른 문제로 넘어가지 못했고 그대로 6솔에서 주저앉았습니다. 그렇게 전체 등수 20등, 대학 등수 12등을 기록해 월드파이널을 노리는 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등수를 기록했습니다...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트남 다낭 리저널만큼은 정말 잘 쳤으면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다낭 리저널에서 6위를 기록했습니다. 진출권을 따지는 못했지만 큰 실수 없이 저희 기량을 온전히 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열심히 했지만 저희의 실력이 월드파이널에 나가기에는 다소 부족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서울 리저널 때에도, 다낭 리저널 때에도 직전 한 주는 마땅히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마음만 심란했습니다. 또 대회가 다가오면 올수록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깊게 고민하며 풀이를 떠올리려고 하기 보다는 재미보다는 불안감에 꾸역꾸역 풀이를 찾아보고 머리에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심적으로 많이 부담이었고 그래서 리저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쨌든 ICPC는 끝이 났고 대학생 시절 마지막 대회였던 다낭에서 좋은 마무리를 짓고 온 지금은 마음이 매우 편안합니다. 가끔씩 생각은 나겠지만 그래도 미련은 남지 않습니다.

 

사실 석사 1학기 학생까지는 ICPC 리저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긴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모든 것을 건 채로 압박감을 가지고 PS를 계속하기보다는 마치 Baba is you를 하는 것과 같이 두뇌퍼즐을 푼다는 느낌으로 알고리즘 공부를 즐기고 싶습니다.

 

뜻하지 않게 알고리즘에 지원이 몰리던 때에 PS를 열심히 해서 여러모로 과분한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비록 저는 암호학을 전공하고자 하지만 PS를 공부하면서 기른 문제해결능력, 코딩능력, 넓고 얕게 익힌 C++ 지식과 컴퓨터 구조 지식 등은 평생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같이 2년 정도를 같이 불태운 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이 100%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대회를 같이 하는 동안 말리더라도 서로 싫은 소리 하지 않고 격려하면서 단 한번도 싸우지 않고 훈훈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시 알고리즘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준 동아리의 다른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도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각잡고 공부를 할 때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 이후에도 혼자서만 공부했다면 지쳤을텐데 졸업할 때 까지 같이 으쌰으쌰하며 달려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슬랙이나 톡방에서 궁금증을 해소해주시고 또 큰 이벤트가 있으면 응원도 해주시고 간간히 블로그에 따뜻한 댓글 남겨주시는 커뮤니티의 다양한 분들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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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도 아쉽게 월드 파이널에 떨어지고나서 팀원이랑 같이 울기도 하고,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많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나중에 사회에서 서로 좋은 모습으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홍준님 블로그 자주 보고 있는데 이렇게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곧 전역이신걸로 알고 계신데 전역 후에 원하시는 것 다 이루시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언제라도 만날 일 있으면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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